영아는 출생 직후부터 각기 다른 기질적 특성을 보인다. 어떤 영아는 쾌활하고 명랑한 반면, 어떤 영아는 잘 울고 자주 보챈다. 또 어떤 영아는 활기차고 행동이 민첩하고, 어떤 영아는 조용하고 행동이 느리다. 이와 같은 개인차는 기질에서의 차이를 반영한다. 기질이란 한 개인의 행동양식과 정서적 반응 유형을 의미하는 것으로 활동 수준, 과민성, 사회성과 같은 특성을 포함한다.
기질 연구가들은 영아와 아동이 보이는 기질에 차이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기질을 형성하는 심리적 특성이 성인기 성격의 토대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질은 "나중에 이것이 아동과 성인의 성격을 형성하는 모체가 된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영아의 경우, 성격이라는 용어 대신 기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기질과 성격의 구분은 표현형과 인자형의 구분과 유사하다. 인자형은 기본 패턴(잠재력)을 결정하지만, 궁극적으로 나타나는 표현형은 인자형의 잠재력이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질이 기본 패턴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아동기나 성인기에 성격으로 나타나는 것은 기본 패턴이 수없이 많은 생활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결과를 반영한다.
기질 연구가들은 또한 기질이 유아기, 아동기, 심지어 성인기까지도 지속성이 있는 것으로 믿는다. 즉, 낯가림이 심한 영아는 유아기에도 여전히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고, 아동기에도 여전히 까다로운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낯선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움츠러드는 경향을 보이는 행동 억제(behavioral inhibition)는 상당히 지속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성도 매우 극단적인 경우─매우 수줍어하거나 맹 외향적인 경우 또는 행동 억제 수준이 매우 높거나 낮은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는 유전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 기질 특성도 환경의 영향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 기질의 구성요소
Tomas와 Chess에 의해 1956년에 시작된 뉴욕종단연구는 기질에 대한 선구자적 연구로서, 지금까지 수행된 기질 연구 중 가장 포괄적인 종단연구로 알려졌다. 이 연구에서는 141명의 영아를 대상으로 아동기까지 이들을 관찰한 관찰법, 부모와 교사를 통한 면접법, 여러 종류의 심리검사를 통한 검사법 등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Thomas와 Chess는 기질을 구성하는 9가지 요인을 발견하였다.
Tomas와 Chess는 이 9가지 특성을 기준으로 하여 영아의 기질을 순한(easy) 영아, 까다로운(difficult) 영아, 반응이 느린(slow-to-warm-up) 영아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전체 연구 대상의 40%를 차지하는 순한 영아는 행복하게 잠을 깨고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 잘 놀며, 쉽사리 당황하지 않는다. 규칙적인 생물학적 시간표에 따라 수유나 수면이 이루어지고, 낯선 사람에게도 미소를 보이며 이들로부터 음식도 잘 받아먹는다. 새로운 생활 습관에 쉽게 적응하며 좌절에 순응한다.
연구 대상의 10%를 차지하는 까다로운 영아는 눈을 뜨기 전부터 울고, 생물학적 기능이 불규칙적이다. 이들은 불행해 보이고 적대적이며 조그만 좌절에도 강한 반응을 보이며, 새로운 사람이나 상황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연구 대상의 15%를 차지하는 반응이 느린 영아는 수동적이고, 새로운 상황에 대해 움츠러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새로운 상황을 좋아하지 않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결국 흥미를 가지고 이에 참여한다.
이 연구에서, 초기의 기질은 이후에도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아기의 까다로운 기질을 보였던 아동은 이후의 학교생활에서도 또래와의 관계나 주의집중에 문제를 보였으며, 반응이 느린 아동은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데 문제를 보였다. 그러나 모든 영아가 이 세 집단 가운데 어느 하나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35% 정도의 영아는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Tomas와 Chess의 9가지 특성을 기준으로 하여 우리나라 영아의 기질을 조사한 연구에서, 9개 기질 영역의 점수를 성별에 따라 비교해 본 결과, 4개의 영역에서 유의한 성차가 발견되었다. 즉, 남아가 여아보다 접근성이 높고, 반응 정도가 약하며, 정서가 긍정적이고, 주의산만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 영아의 기질과 부모의 양육 행동
영아의 기질은 부모, 특히 주 양육자인 어머니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까다로운' 기질을 가진 영아는 부모를 좌절하게 만들고, 부모로 하여금 그들에게 기대를 덜 걸게 하는 형태로 부모의 양육 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모의 양육 태도 또한 영아의 기질을 변화시킨다. 수줍고 소심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외부 세계에 대한 대처 양식을 부드럽게 촉진하는 환경에서 양육되는 영아는 이러한 속성이 점차 소멸하는 반면, 사교적이고 과감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은 소심한 영아가 되게 만든다. 부모의 태도와 영아의 기질 간의 상호작용은 쌍방적 원칙에 근거한다. 즉, 영아의 발달은 자신이 타고난 기질과 그를 사회화시키는 사람의 기질 간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부모-자녀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부모는 자녀가 타고난 유전적 요인에게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한다.
느린 기질을 가진 영아는 활발한 기질을 가진 영아만큼 부모가 요구하는 진도에 맞춰 나가지 못한다. 이에 실망하여 부모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영아는 더욱 위축되고 발달과업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이러한 성향을 무시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영아는 자기 행동을 바꾸게 될 것이다.
Tomas와 Chess는 이처럼 영아의 기질과 환경이 상호작용하여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한다는 '조화의 적합성' 모델을 제시하였다. 즉, 영아의 이상적 발달은 영아의 기질과 부모의 기질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부모가 영아의 기질에 따라 양육 행동을 조절한다면 그 결과는 보다 조화로운 관계가 된다. 반면, 영아의 기질과 부모의 양육 행동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부모나 영아 모두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까다로운 영아의 부모가 인내심을 가지고 영아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처한 경우에는, 아동기나 청년기에 더 이상 까다로운 기질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까다로운 영아를 대상으로 인내심과 민감성을 보이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상 많은 부모가 까다로운 영아에게 쉽게 화를 내고 처벌적 훈육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조화롭지 못한 관계의 예이다. 이런 경우 영아는 까다로운 기질을 계속 유지하고 사춘기에는 문제행동을 많이 보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아의 기질을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부모와 자녀 간에 보다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부모의 역할은 아동의 타고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도록 풍부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아동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환경에 노출해서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것에 능숙한지를 판단하고, 이 점을 최대한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동일한 기질을 가진 아동이라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범죄자로 성장할 수도 있다. 공격적이고, 충동적이고, 겁이 없는 남아는 일반적으로 다루기가 어렵다. 이들의 양육을 포기하여 방치하거나 벌로 다스리는 것은 쉽지만, 그 결과는 이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절하게 통제하고, 이들의 행동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모는 상이한 결과를 유도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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